
이 글은 2010년 개봉한 영화 「황해」를 중심으로, 살아남기 위해 떠났지만 끝내 돌아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궤적을 더 깊고 길게,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도록 풀어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작품은 범죄 스릴러이자 누아르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이주와 가난, 책임과 체념이 겹겹이 쌓인 생존의 기록에 가깝다. 「황해」에는 통쾌한 승리도, 명확한 정의도 없다. 대신 숨이 턱 막히는 현실과, 그 현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몸부림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잔혹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폭력적이지만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살아 있기 위해 떠난 사람, 황해
영화 「황해」의 주인공 구남은 연변에 사는 조선족 택시기사다. 그는 특별한 꿈을 꾸지 않는다. 성공도, 출세도 아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살아가는 것”이다. 아내는 빚을 갚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고, 그는 남겨진 채 빚과 의심, 소문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영화는 이 상황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숨이 막힌다. 이 삶은 극단적인 불행이 아니라, 너무도 현실적인 가난이기 때문이다.
구남은 무기력하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 떠밀리듯 선택한다.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할 힘조차 없는 상태. 영화는 이 무력함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선택지가 없는 사람에게 선택의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고.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불편함으로 남는다.
구남이 황해를 건너기로 결심하는 순간, 영화는 이미 끝을 예고한다. 돌아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 선택이 그를 얼마나 멀리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관객만이 직감한다. 이 여정은 귀환이 아니라, 소모의 여정이 될 것임을.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인간의 몸부림, 돌아가기 위해 끝없이 멀어져야 하는 사람
한국으로 넘어온 구남은 곧바로 범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하지만 그는 범죄자가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해치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단순한 동기가 영화에서는 가장 잔인하게 작동한다. 필요는 곧 약점이 되고, 약점은 이용당한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설명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폭력은 그저 연속된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도망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른다. 이 과정에서 구남은 점점 말라간다. 몸도, 눈빛도, 판단도. 영화는 이 변화를 세밀하게 따라간다. 그래서 관객은 어느 순간, 이 인물이 ‘무엇을 원했는지’보다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영화가 국경을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해는 새로운 기회의 바다가 아니라, 건너는 순간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경계선이다. 연변에서도, 한국에서도 구남은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외부자다. 이 이중의 소외는 영화의 가장 깊은 비극이다.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는 인간의 초상.
연출은 거칠고 집요하다. 카메라는 인물을 보호하지 않는다. 숨 돌릴 틈 없이 따라붙고, 도망칠 때마다 더 가까이 붙는다. 이 시선은 관객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보기 힘들지만, 눈을 돌리기도 어렵다. 이 고통이 현실의 일부라는 사실을 영화가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황해」의 끝에서 남는 감정은 허탈함이다. 모든 것이 끝났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사라졌지만, 구조는 그대로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희망을 남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희망은 너무 사치스러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개인의 선택’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게 된다. 선택은 언제나 조건 위에서 이루어진다. 구남의 선택은 잘못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서 있던 자리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영화는 그 사실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결국 「황해」는 범죄 영화가 아니라 경계의 영화다. 국경, 계급, 책임의 경계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남긴다. 건너왔지만 돌아갈 수 없는 얼굴 하나를. 그 얼굴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외면해왔던 현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해」는 보고 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가슴 어딘가에, 무겁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