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감독의 2010년 작품 「하하하」는 통영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의 술자리를 통해 기억과 관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선택한 시선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과연 일상의 솔직함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 문제의식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일상적 회피: 개인 서사로의 축소
「하하하」는 사회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개인의 일상적 순간에만 집중합니다. 같은 여행지 통영을 경험한 두 남자가 각자의 기억을 풀어놓지만,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철저히 사적 영역 안에 가둡니다. 큰 사건도, 극적 반전도 없다는 것은 미니멀리즘의 미덕일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말의 리듬과 웃음의 타이밍을 통해 인간 관계의 진실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정작 그 관계가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유리하게 편집하고 덜 초라해 보이도록 다듬는 모습은 분명 인간적 본능이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어떤 사회적 압력이 그런 자기 검열을 만드는지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이는 대상 관찰에 대한 의지가 결여된 태도입니다. 좋은 방향에서만 인물을 바라보거나 관객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사회적 측면에서 문제점을 파악해야 해결책이 나오는데, 「하하하」는 그런 문제점을 들추어내거나 파헤치기보다는 개인의 일상적 측면으로만 시선을 제한합니다. 마치 사회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개인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영화 속 남성 인물들의 시선과 태도에서 드러나는 젠더 권력 관계, 지식인 계층의 자기만족적 대화 방식, 통영이라는 지역을 소비하는 서울 중심적 시각 등은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인데, 영화는 이를 자연스러운 배경으로만 처리합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관찰의 태도입니다.
관찰의 한계: 비판 없는 재현
영화는 인물들이 말을 하다가 본심이 튀어나오고 스스로 놀라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포착이 비판적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고정된 카메라와 길게 이어지는 대화, 과장 없는 음악이라는 미니멀한 연출은 중립적 관찰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상을 그대로 긍정하는 보수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강조하는 지점이 다르고 빠뜨리는 장면이 다른 것을 영화는 "아주 인간적인 본능"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본능 뒤에는 권력 관계가 숨어 있습니다. 누구의 기억이 더 신뢰받고, 누구의 서사가 정당화되며,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지는가. 이런 질문 없이 단지 "기억은 주관적"이라는 상대주의로 넘어가는 것은 관찰의 윤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영화가 관계의 시작을 미화하지 않고 어색함과 오해를 그대로 둔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어색함과 오해가 왜 발생하는지, 어떤 사회적 학습과 구조가 그것을 만들어내는지는 탐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은 원래 그렇다"는 식의 본질주의로 귀결됩니다. 이는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태도입니다.
웃음과 침묵 사이에 잠깐 걸어둔 깨달음은 분명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것과 비판적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현실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현실이 그러한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하하하」는 전자에는 성공했지만 후자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관찰의 한계입니다.
애매한 결말: 문제의식의 부재
「하하하」의 마지막은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고, 누군가는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 남겨둡니다. 영화는 이를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결국 문제점에 대한 애매모호함으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열린 결말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결말만 열어두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왜 이야기를 나누는가"인데, 정작 그 이야기 나눔이 어떤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은폐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말이 상대에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통찰은 개인 심리의 차원에 머물 뿐,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대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성취입니다. 하지만 그 사유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체념으로 끝난다면, 이는 현실의 모순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웃고 넘긴 이야기 속에 충분한 진실이 남아 있다는 확신은 위안이 될 수 있지만,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관객이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교묘함입니다. "내가 너무 비판적인가?" "이렇게 편안한 일상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은가?" 하는 식의 자기 검열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건강한 관객의 역할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볼 때 문제점이 파악되고 해결책이 나옵니다.
「하하하」는 말의 영화이지만,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웃음과 침묵 사이에서 드러나는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지만, 그 마음의 결이 형성된 사회적 조건은 외면합니다. 조용한 확신은 때로 안일한 회피가 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성향을 가진 것은 잘못이 아니라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