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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말로 다 닿지 못한 마음이 끝내 선택한 방식

by newlife21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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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 일부 장면 갈무리

이 글은 2010년 개봉한 영화 「시」를 중심으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어떻게 말을 잃고, 그 침묵 끝에서 왜 ‘시’라는 형식을 붙잡게 되는지를 더 깊고 길게, 사람의 호흡으로 풀어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작품은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감정을 붙잡아 두고, 쉽게 울리지 않으며, 쉽게 용서하지도 않는다. 「시」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자극이 아니라 정직함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가 정말로 말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말을 배우려는 늦은 시간, 말로 다 닿지 못한 마음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는 노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우연처럼 시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한 번쯤은 시를 써보고 싶어서.” 이 말에는 욕망보다는 여백이 있다. 영화는 이 출발을 조용히 따라간다. 시를 배우겠다는 선택은 인생을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다는 소망에 가깝다.

미자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다. 손자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병원에 다닌다. 기억은 조금씩 흐릿해지고, 말은 가끔 길을 잃는다. 영화는 이 노년의 시간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미자가 시를 배우는 장면은 아름답기보다 간절하게 느껴진다. 더 늦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처음부터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이유는, 시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시는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미자가 마주한 현실은 추하고 복잡하다. 영화는 이 간극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벌려 둔다.

말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끝내 선택한 방식 시

영화의 중심에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자극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설명도, 재현도 최소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게는 점점 더 커진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어른들의 선택과 침묵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자는 이 진실을 알게 된 뒤, 그 사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픈 지점은, 누구도 완전히 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책임은 분산되고, 말은 흐려지고, 해결은 돈으로 대체되려 한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말은 배려처럼 포장되지만, 실은 가장 잔인한 선택이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차분히 지켜본다. 비난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미자는 계속해서 시를 쓰려 한다. 하지만 시는 나오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장은 현실 앞에서 자꾸 무너진다. 이 과정은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양심의 고통에 가깝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바라봐야 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외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사실을 아주 정직하게 드러낸다.

연출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음악은 거의 없고, 카메라는 미자의 얼굴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강물, 나무, 하늘 같은 것들. 이 자연의 이미지는 위로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질문처럼 다가온다. 이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시는 선택이었다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관객은 깨닫게 된다. 시는 도피가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로 한 선택. 책임을 피하는 대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남기려는 선택. 이 영화는 그 선택을 숭고하게 그리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존중한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시는 아름다운 말의 집합이 아니라, 끝까지 말하려는 태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태도는 용기와 연결되어 있다. 아무도 듣지 않을지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끝내 써야만 하는 말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결국 「시」는 문학 영화가 아니라 인간 영화다. 늦은 나이에도 선택할 수 있는 존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말한다. 말이 사라져갈수록, 우리는 더 정확한 말을 찾아야 한다고. 그 말이 시가 되었든, 침묵이 되었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만은 끝까지 남겨야 한다고. 그 조용하지만 단단한 메시지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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