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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용서라는 말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얼굴

by newlife21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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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화면 갈무리

이 글은 2007년 개봉한 영화 「밀양」을 중심으로, 상실을 겪은 인간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신앙과 용서라는 말이 실제 삶 앞에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아주 깊고, 사람 냄새가 나도록 풀어내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작품은 감동을 주려 하지 않는다. 위로도, 해답도 쉽게 건네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려다 또다시 주저앉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밀양」은 보기 힘든 영화다.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말을 걸기보다, 관객의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건드린다.

밀양, 새로운 시작을 믿고 싶었던 한 사람

영화 「밀양」은 신애라는 여성이 아들과 함께 ‘밀양’이라는 낯선 도시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그녀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영화는 이 선택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표정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은,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는 다짐보다는 “이제는 좀 괜찮아지고 싶다”는 소망에 가깝다.

신애는 밝아 보이려고 애쓴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피아노 학원을 열고,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 한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이 밝음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은근히 암시한다. 그 밝음은 회복이 아니라, 버티기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상처 입은 사람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괜찮은 척’을 할 수 있는지를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당시 「밀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힘든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힘듦은 자극적인 장면 때문이 아니라, 너무 현실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누구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이 영화는 바로 그 감정을 정면으로 다룬다.

용서라는 말, 믿음이 구원이 되지 못하는 순간

신애가 겪는 비극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영화는 그 사건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처리한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감정을 몰아붙이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도망칠 틈 없이 그 고통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이런 상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애는 신앙에 기대려 한다. 믿음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교회에서 울고,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며 그녀는 처음으로 감정을 쏟아낸다. 이 장면들은 종교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인간적인 장면이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붙잡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신앙을 위로의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이 가진 폭력성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용서했다”는 말이 피해자에게 어떤 상처가 될 수 있는지, “하나님이 용서했다”는 선언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피하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불편해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매우 정직하다. 실제 삶에서도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용서’라는 말을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신애의 분노는 이해받지 못한다. 슬픔보다 분노가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지점을 아주 날카롭게 짚는다. 울고 있을 때는 위로받지만, 분노를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이 고립감이 신애를 다시 한 번 무너뜨린다. 그리고 관객 역시 깨닫게 된다. 우리는 과연 고통받는 사람의 감정을 끝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무너지는 인간,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

「밀양」의 마지막은 조용하다. 극적인 화해도, 구원도 없다. 대신 아주 작은 장면 하나가 남는다. 그 장면은 완성이나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 있음,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모든 고통이 극복될 필요는 없다고. 어떤 상처는 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쉽게 말을 얹을 수 없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다 이유가 있어요” 같은 말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깨닫게 된다. 「밀양」은 위로의 언어를 거부한다. 대신 침묵 속에서 곁에 남아 있는 태도를 택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연대라는 듯이.

결국 「밀양」은 신앙 영화도, 비극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 영화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겪고도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용서하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얼굴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지만, 진짜 사람 냄새가 난다. 아프고, 초라하고, 그래서 더욱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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